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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서(둘째날)

박영희 2011. 7. 23. 23:08

 

둘째날, 1월 22일(토)


  아침 일찍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어제의 피곤함이 남아 있어서인지 충혈된 눈은 풀리지 않고 다리가 뻐근하다. 그렇지만 오늘 일정을 생각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였다.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으로 해결하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 답사는 모지항과 시모노세키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고 싶었던 일정이었다. 하카타에서 급행기차를 타고 고쿠라에서 다시 보통열차로 갈아타고 모지항역에 내렸다.

 

  모지항역은 역사(驛舍) 자체가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일본 철도역사(驛舍)중에 최초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역사를 뒤로 하고 우선 관광안내소에서 한글로 된 모지여행지도를 부탁했다. 한국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일본의 어지간한 관광지에는 한글 서비스 안내문이 다 준비되어 있다.

  안내판을 들고 우선 바닷가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바람이 센지 걱정이다. 온도도 낮아서 그런지 추위가 느껴진다. 우선 ‘블루윙모지’로 향했다. 연인들의 다리로 유명한 곳으로 다리가 열렸다가 닫힌 후 연인이 함께 제일 먼저 건너면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사중이다. 공사에 열중하는 분들은 우리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쳐다볼 뿐이다.

  할 수 없이 이동을 하여 간몬해저 터널을 가기위해 철길 옆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관광열차가 지나가는 곳인데 겨울철에는 운행을 안한다고 하여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런데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매우세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리서 보이던 간몬해협이 보이고 큰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간몬해협은 일본은 혼슈와 큐슈사이의 해협을 지칭하는 것으로 직선거리가 1,000미터도 안 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물살이 매우 세다. 큐슈의 후쿠오카현과 혼슈의 야마구치현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해저 터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우리 일행도 후쿠오카 땅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야마구치현으로 가기위해 해저터널로 갔다.

 

 

 

                                                     < 해저터널과 현 경계선 >


  주말이라 그런지 이 해저터널을 운동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터널 양쪽 끝을 반환지점으로 삼고 계속 왔다갔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곳에서도 운동을 하는 구나...... 갑갑하지 않을까? 시원하고 넓은 바깥 공원이나 해안로를 두고 왜 이런곳에서.....속으로 생각했다.

  

  해저터널을 건너 찾아간 곳은 해안가의 포대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정선생님의 해설이 있었다. 일본근대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이곳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최근 일본에서 대하역사드라마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아츠히메’와 ‘료마’의 역사적 배경이 되기도 한 이곳은 당시 야마구치현과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일청강화기념관’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사실 청일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쟁이다. 청과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싸운 것이라 그런지 역사교과서에는 자세하게 싣고 있지 않지만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한․중․일 세 나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전쟁이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의 대표를 이곳까지 불러서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기 때문에 일본에 있어서는 어찌보면 자랑스러운 곳이라 할 수 있다. 1895년 청나라는 이곳에 일본에서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청의 속국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된다.

 

                   < 회담장 내부 >                               < 일본측 대표 이토 히로부미와 무츠 >


 

                                                  < 이홍장길과 안내판 >


  정선생님이 알려주신 특별한 길이 있었다. 당시 강화조약이 체결될 즈음에 일본의 열혈청년(?)이 청나라 대표로 참석한 이홍장을 흉기로 테러를 감행하였는데 이홍장이 이를 계기로 회담장에서 숙소까지 좁은길로 숨어서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 길을 ‘이홍장도’라고 부른다. 우리 일행도 그 길을 따라 숙소까지 가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은 그 길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중국 관광객이 이 안내판을 보았으면 어찌했을까?

 

 

 우린 당시 청나라 대표단들이 사용한 숙소 인접사를 둘러보고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안에는 싱싱한 회와 건어물, 초밥가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즉석에서 만든 초밥을 구입하여 좁은 좌석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도 보이고, 날씨는 좀 춥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가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 일행은 이곳의 명물인 복어요리를 먹기로 하였다. 비교적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복어회정식을 시켜 먹었다. 식당 점원이 우리가 한국에서 온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간단한 한국어로 말을 한다. ‘어서오세요’부터 ‘감사합니다’까지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우리나라 숟가락이었다. 일본식 숟가락이 아닌 손잡이가 가늘고 긴 한국식 숟가락......

 

 

 

  점심을 머고 나서 일행은 다시 간몬 해협을 건너는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서 모지항으로 건너왔다. 배를 타고 건너는 동안 넘실대는 배안에서 그 옛날 조선시대 조선통신사 일행이 바로 이 해협을 배를 타고 건넌 일들이 생각났다. 부산에서 출발한 뱃길이 그리 순탄치 않았을 텐데 이곳을 지나며 통신사 일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지항에서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31층 전망대로 향했다. 모지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며, 멀리 시모노세키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슨 행사가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굴을 아주 싸게 팔고 그 굴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화로와 장소를 제공하는 장터 행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곳만의 토요특별행사로 보였다.


 

 

  국제우호기념도서관 정말 아담하고 예쁘게 지은 건축물이다. 재정 러시아가 중국에 세운 철도 사무실을 북큐슈와 중국 대련시의 우호도시 체결 15주년 기념으로 똑같이 세운 도서관이다. 모두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은 중국요리 식당이고 2층과 3층에 한국, 중국, 일본의 다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 모지세관을 찾았다. 모지항의 옛날 세관업무를 보던 곳인데 지금은 내부를 모두 개조를 하여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었다. 때마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모지항을 배경으로 찍은 시민들의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 우리 안산시도 이렇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안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이 꾸민 사진 전시회......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구 모지 미쓰이 클럽 건물이다. 1921년에 미쓰이 물산이 손님접대와 숙박시설로 만든 건물이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이곳은 1922년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쉬타인 부부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머물던 곳이었다. 2층 전시실은 당시 아인쉬타인이 방문했을 때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일본의 여류작가 하야시 후미코의 자료실이 있었다. 마침 한국의 여류소설가 박완서씨의 사망 소식을 들은 터라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 일정으로 철도박물관을 찾았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으로 열차타기 꼬마 기차가 지나간다.

  이 박물관은 큐슈에서의 기차 역사를 잘 꾸며 놓았다. 기차 전문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은 곳으로 일본 철도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우리 안산도 일제강점기에 수인선이 지나가던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철도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철도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일본이 대륙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철도를 부설하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핸드폰을 열어보니 정선생님의 문자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철도 사고가 있어 기차가 지연되고 있으니 일정을 빨리 끝내고 서둘러 기차를 타고 오라는 문자였다. 그런데 그 문자를 이제야 열어 보았으니.... 어쩌나 지정석으로 표를 끊어 놓았는데 기차가 연착이 되면 우리 자리는?

  다행히 오전에 일어난 사고는 조기 수습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인지 우리가 타고 간 기차는 예정대로 갈 수 있었다. 하카타 역에서 내려 우동, 소바집에서 저녁을 먹고 역 근처 100엔 하우스로 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1,000원 하우스인 셈이다. 진열된 상품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상품에 모두 한글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아니! 100엔 물건에도 한글서비스를 해주다니.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은 일본의 근대 역사와 건축물을 주로 둘러 보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출처 : 안산지역사연구모임
글쓴이 : 안산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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