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답사

[스크랩] 미워만 할 수 없는 일본을 다녀와서 -- 제 4 일

박영희 2012. 2. 18. 13:47

넷째 날 : 201223() 오늘은 버스도 없고 당초 자유일정으로 계획하여 정 선생님의 안내를 오전만 받기로 하고 東大寺(도다이지)로 향했다. 近鐵奈良驛에 도착하여 큰 길을 걷는데 나라사슴공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보도로 사슴들이 한두 마리 나타 나 길을 피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는다. 동대사가 가까워질수록 사슴은 점점 많아지는데 어떤 놈은 사람에게 다가와 먹이를 달라고 머리를 아래위로 움직이며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도다이지(東大寺)는 일본인의 축소지향 이미지를 반전하는 대단히 큰 절이었다. 입구의 대문을 남대문이란 현판을 붙였는데 하나의 법당 같았고 경내도 넓었으며 중앙의 우리 대웅전에 해당하는 금당으로 가는 길은 대리석을 다섯줄로 깔았는데 굉장히 넓다. 그 길 중앙에는 인도석을, 그 좌우에 중국석을, 그 다음 좌우에는 한국석을 놓았고, 그 다음에 전체 바닥을 일본석으로 조성해놓았다. 이것은 불교의 발상지 인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길 중앙에 인도석을 놓았으며 그 다음은 전래된 순서로 중국과 한국 석을 놓았고 맨 나중에 불교를 받아들인 자국을 의미하여 바닥 전체를 일본석을 놓았다고 한다.

 

금당 내에 대불은 일본 최대의 금동비로자나불로 불상의 높이가 15미터이고 대좌높이가 3미터라고 하니 전체높이가 18미터에 이른다. 우리나라 절의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의 크기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내부를 둘러보며 부처님 콧구멍인지 귓구멍이라고 하는 큰 나무기둥의 구멍을 나도 통과해 보았다. 우리 일행 중 날씬한 분은 거의 다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액막이 복도 받았을 것이고 추억도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기념품 구입유혹을 뿌리쳤는데 여기서 발견한 킹사이즈의 손톱 깎기를 600엔에 하나 샀다.

 

경내에 있는 二月堂(니가쯔도)鐘樓을 거쳐 正倉院(쇼소인)까지 갔는데 공사 중으로 문이 닫혀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내부수리 공사 중이라 길을 막았는데도 끈질기게 현장에 가보았으나 울타리가 높고 철저하게 가려져 있어 정창원 겉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못 말리는 대단한 역사문화 기행 모임이라고 자인했다. 정창원은 한 말로 귀중한 문서와 자료가 보관된 보물창고라고 한다.

 

어제까지의 긴장이 풀렸는지 모두가 평안하고 자유로워 여유만만하게 걷다보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고 12시가 되어 간다. 興福寺(코후쿠지)5중탑을 보아야 하는데 우선 점심을 어디서 먹어야 효율적일까? 이다.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쯔르바(鶴橋)에 가면 한국식 육개장 이나 해장국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도 거의 모두가 관심 밭기다. 국민의 뜻에 따라 여기서 바로 점심을 먹기로 하여 近鐵奈良驛으로 가서 입맛대로 찾아 점심을 먹고 興福寺 5중탑을 보기로 했다. 식사 후 고후지의 방생연못이었던 사루사오노이케로 바로 찾아 갔다. 한 바퀴를 돌면서 탑 그림자를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 말로 우리나라 불국사의 무영탑이야기 같이 되어버렸다. 오후 시간이 되어 해의 방향이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연못에서 거북이 한 마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 이제부터는 선생님과 헤어져 진짜로 자유 관광인데 각자가 원하는 관광지는 묘하게도 고베(神戶)를 원했다. 그 곳을 가려면 역으로 가서 전동차를 빨리 타야만 진행이 될 터인데 모두가 만만디다.

 

나는 역 1층에서 여행안내소를 발견하여 나름대로 고베행 안내를 받았고 지도와 전동차 시각표를 입수했다. 그렁저렁 홈에서 三宮(산노미야)전동차를 탔는데도 정 선생님과 고베행 교통편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三宮(산노미야)은 고베(神戶)시내의 전철역이고 우리가 탄 이 전동차가 한 번에 고베로 가는 급행차이며 종점이 바로 그 곳이었다. 三宮驛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5시다. 오전부터 고베로온   김 진 선생님을 역구내에서 만났다. 고집스럽게 온천을 택한 나만이 일행과 떨어져 20:00시에 개찰구 앞 바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용감하게 혼자서 출구를 나왔다. 문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리마(有馬)온천을 찾아가야하는데 알 길이 없다. 한 치 앞도 생각 못하고 객기를 부린 것이다. 우선 버스로 가리라 하고 버스터미널을 갔다. 대화가 안 되니 아리마온천행 버스를 탈 수 없어서 버스는 그만두기로 하고 전철을 타려고 내렸던 곳을 찾는데도 한참 헤맸다. 아예 택시로 가 볼까 생각도 했는데 너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모두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돌아오는 전동차를 탔다. 아마도 한 시간은 헤맨 것 같다. 돌아오면서 제일 큰 걱정은 8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야하는데 전화번호도 모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생각해낸 방법은 정진각 선생님께 알려서 이우석 선생님께 전하면 되리라 하고 정 선생님께 메시지를 2번이나 보내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엔 연락이 안 되어 나도 이번 여행에서 한 건의 사건을 만들었다. 가능한 한 동포들에게 속 썩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했는데 정말 미안하게 됐다. 그 와중에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너무 죄송하여 찜찜한 기분으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적당히 때우고 방에 들어와 나 한 사람을 기다리느라 애태우는 일행을 상상하며 속 태우다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잠이 들었다.

출처 : 안산지역사연구모임
글쓴이 : 이시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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