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세상을 만나다. 도성달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윤리, 세상을 만나다, 도성달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펴냄
(윤리, 내 안에 너 있다.)
이 책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흐름, 유행 등을 윤리와 결부시켰다. 식빵을 오래 두면 겉에 있는 수분이 증발해 빵이 딱딱해진다. 마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씹어도 씹어도 딱딱한 ‘윤리’와 같다. 하지만 갓 구운 식빵은 말랑말랑하니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까지 있다. 먹기도 쉽고, 소화도 잘 된다. 이 책 『윤리, 세상을 만나다』는 말랑말랑한 갓 구운 빵 같다. 윤리라는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이정표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첫 인상을 결정하는 제목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윤리, 세상을 만나다!’ 윤리가 지배하던 세상은 중국의 춘추전국 시기이며 약육강식의 시대로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아 보자고 유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이 윤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 윤리와 세상이 만난다고? 학교에서 배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로 가득한 윤리 내용을 생각해 봤을 때는 가능성이 희박한 제목이다. 이렇게 불가능한 제목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사람들의 관심 저 너머 희미해진 것이 윤리이고, 더구나 지금은 법전 속에서 의미 없는 글자로 존재하는 것이 윤리이다. 독자들이 안 읽을 것 같은 책이니까, 제목이라도 눈길을 사로잡는 전략이구나, 윤리를 어떻게 뻥튀기 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책 표지를 보자마자 뇌리를 스친다.
윤리는 어렵다. 윤리는 고리타분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는 약간은 두려움에 떨며 작가의 말부터 읽어 보았다. 작가는 윤리는 실천학이라고 했는데, 그 거창한 윤리를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윤리를 실천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행복과 윤리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안개 속에 보이는 먼 산의 모습같다.
이 책은 ‘윤리’ 에 대한 내용이 기본이니까 주 내용은 윤리에 대한 이론으로 설명해 놓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목차를 보니 ‘일상에서 바라본 윤리적 단상’과 ‘우리의 일그러진 일상들, 또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를 제목으로 한 세 개의 작은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처음 작은 제목인 ‘청계천에서 비키니를 입으면?’을 보고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이런 내용도 ‘윤리’랑 연관 있으면 재밌겠는데? 나도 모르게 제목을 따라서 ‘청계천에서 비키니를 입으면?’혼잣말을 하다가 킥! 웃으며 ‘볼 만 하겠지’하고 대답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윤리’가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첫 단추였다. 이처럼 어렵다고 생각한 ‘윤리’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나 담론을 만나 차곡차곡 단추가 채워지고 있었다. 무거운 색의 ‘윤리’를 ‘세상’이라는 다양한 색과 잘 어우러지게 연결시켜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았다.
그 중 씨줄과 날줄처럼 윤리와 세상이 만나고 있는 예를 들면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출근’을 볼 수 있다. 이 꼭지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출근하는 것에 대한 찬반의 내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리와 연결될 것 같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공직자의 복장에 대한 선입견이 맞물려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품이나 도덕심 등 윤리적 덕목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는 태도, 표정, 복장 등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도 공직자의 단정한 복장이 예의범절에 속한다고 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예부터 예절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 배려의 마음을 표현하는 형식이며 규칙이다. 그런데, 반바지와 샌들 차림이 품위를 어기고 예절을 지키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해서 윤리와 세상을 접목시켰다. 단추와 단추 구멍이 제대로 맞물려야만 어그러지지 않는 옷이 되듯이 올바르고 공정한 사회라는 단추와 '윤리'라는 단추 구멍이 각각 다른 곳에 있으면 이루어질수가 없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내 기준에 따라 멋대로 단추 구멍이 커지거나 기울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나를 따갑게 한 부분도 있었다.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며 일상적으로 되풀이 하는 행동들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나이를 물어보고, 성과 고향에 대해 알려고 한다. 같은 나이면 친구이고, 위, 아래면 언니, 동생 관계가 맺어진다. 당연한 듯 여겨지던 것이 끼리끼리만 통하는, ‘패거리 문화’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파란색 물감 속에 들어가면 당연하게 파란색으로 물들게 되어서 다른 색은 볼 수가 없듯이 패거리 속에 들어가면,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나 같은 경우도 사람을 만나면 나이를 물어보고 언니, 동생 하고, 같은 고향 사람이면 한결 가깝게 느껴지고 더 잘해주려는 마음이 든다. 이런 호칭은 인간관계를 훨씬 부드럽게 해주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공평하지 못하며 자칫 정에 이끌려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능력과 공정성보다는 연고와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우선 순위에 둘 수 있다. 어떤 자리가 비었거나, 무슨 일을 맡길 경우는 이왕이면 아는 사람을 밀어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단지 정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이 패거리 문화가 사회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부정부패의 원인이요, 온상의 뿌리가 된다는 것도 각성하게 되었다. ‘윤리’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동생, 언니를 맺을 때는 나에게 진심으로 사심이 없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버릇이 생겼다. 뉴스에서 보도 된 사건을 보게 되면, 나 같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무거운 사건이나, 가벼운 일이나 나의 마음속에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은 무얼까? 하면서 자꾸 기울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윤리’ 잣대를 꺼내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남성이 여성을 길거리에서 폭행하는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말리다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 주위에 있던 많은 시민들은 싸움을 말리지도 않고 구경만 하였으며, 더구나 싸움을 말리다가 남성이 밀쳐서 쓰러졌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방치되다가 그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우리 ‘윤리’의 현 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싸우는 사람을 보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쓰러진 사람을 보았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적어도 방관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최소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일은 할 것이다. ‘윤리’가 ‘세상’과 어떻게 통할 수 있는지 이 책에서 배운다.
‘윤리’를 실천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옳다. 윤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명한 광고인 ‘내 안에 너 있다!’를 ‘윤리, 내 안에 너 있다!’ 로 바꿔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