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인물

[스크랩] 장유선생묘및 신도비

박영희 2011. 3. 14. 23:24

 장유선생 묘및 신도비

지정번호 ; 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

지정일자 ; 1986, 03,03,

소재지 ; 시흥시 조남동산1-5

시 대 ; 묘-인조16년(1638)

           신도비-숙종2년(1676)

장유(張維, 1587~1638)선생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문장가로,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ㆍ묵소(?所)이며,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광해군 원년(160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주서, 대제학, 나주목사, 예조ㆍ이조판서ㆍ우의정 등을 역임하고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봉해졌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술(醫術), 병서(兵書) 등 각종 학문에 두루 능통하였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저서가 있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계곡만필(谿谷漫筆)』, 『음부경주해(陰符經註解)』 등이 전해진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그 앞에 혼유석ㆍ상석ㆍ향로석이 놓여 있고 좌우에 문신석인 두 쌍과 망주석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 70m 떨어져 있다. 신도비는 2.5m×4.2m, 높이 1.3m 규모의 귀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비신의 규모는 높이 2.65m, 폭 1.3m, 두께 32cm이며, 비개(碑蓋)는 옥개(屋蓋) 위에 용(龍)이 조각되어 있다. 이 신도비는 현존 우리 나라의 신도비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묘소에는 현종 어제(御題)의 표액(表額)과 그의 아들 선징의 음기(陰記)로 된 표석 및 정두경(鄭斗卿)이 찬(撰)한 지석이 있다.

선생의 사망 39년 만인 숙종 2년(1676) 10월에 세운 이 신도비의 비문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청평위(靑平尉) 심익현(沈益顯)이 썼으며, 전자(篆字)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가 썼다. 묘역 주변에는 선생의 부친 장운익(張雲翼, 1561~1599 이조판서) 신도비를 비롯하여 아들 장선징(1614~1678 예조판서), 손 장훤(천안군수), 증손 장진환(張震煥, 1646~1722 예산현감) 등의 묘가 있다.

묘역에서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는 효종비 인선왕후가 부친(장유)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법연사지가 있고, 현재의 법연사는 1989년에 건립하였는데 묘역에서 북쪽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법연사 아래에는 선생의 종택(宗宅, 조남동 21)이 있다.

               출처 ; 시흥시청 홈페이지

 장유선생 묘

 뒤에서 바라본 후경.

 앞에서 본 현무봉.

 자유선생의 아들 장선징의 묘

 

장선징의 묘비.

출처 : 안현 돋음볕 마을
글쓴이 : 굴렁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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