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도

[스크랩] 청일전쟁 전적지 답사

박영희 2010. 10. 14. 23:12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한지 100년이 흘렀다.

 

동북아에서 일본이 패권을 장악하는 단초가 되는 사건은 청일전쟁(1894년)이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이후,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을사늑약을(1905년) 강제로 체결한 후, 경술년(1910년)에는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였다.

 

해방되기까지 36년이 걸렸으며, 자주 독립이 아니었기에, 조국은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5년 후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해방이 된지 6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친일파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태이고,

 

그 자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청일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이 그들의 이권을 취하기 위하여 우리 땅에서 일으킨 전쟁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조건은 100년 전과 비교하여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이 분단되고, 미국이란 나라가 가세되어 있는 더 어려운 형국이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평택, 군산, 전주 축의 미군이 중국과 대립하고 있어,

 

그들 국가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이 땅에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2의 청일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시점 청일전쟁 전적지를 답사하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8시 30분 : 선재도 선착장 > 

 

7시 30분 안산 시청을 출발하여 반월공단 - 시화호 방조제 - 대부도 - 선재대교를 건너

 

1시간 만에 선재도 선착장에 도착.

 

날씨가 좋지 않아 풍도에서 오기로 한 배는 뜨지 못하고,

 

새로운 배를 수소문하기까지 1시간 정도 선착장에서 대기.

 

선착장에는 철제로 만든 인공어초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다.

 

콘크리트 인공어초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철제로 만든 어초를 사용하고 있으나

 

철제 어초도 녹이 슬므로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번개와 천둥이 치는 조각배 선상에서 - 뒤에 오는 배가 흐리게 보인다.>

 

 9시 30분 경 두 대의 배에 나누어 승선.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마자 비가 거세게 내리친다.


가시거리가 3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해무가 자욱하다.


달리는 배의 속도에 더하여, 장대비가 휘몰아쳐 우비를 꺼내 비바람에 대비하다.


어두컴컴한 대양위에서 번개와 천둥이 연신 우리 배를 따라오며 번쩍거린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배의 형체도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아 파도는 잔잔하다.


슬쩍 곁눈질 쳐 일행들 거동을 살펴보니... 겁에 질렸으되,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30분 정도 지나자 풍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비는 내리나 천둥 번개를 그침.


휴~~


 <배에 실린 첨단 장비들 - 해양용 네비게이션,  수심계,  주위 어선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탐지계  >

 

선장은잠시도 눈을 떼지않고 기기를 주시한다.

 

지질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서해안의 평균 수심은 45미터 정도가 된다." 고 한다.

 

선재도에서 풍도 가는 항로의 수심은 대략 20미터 정도 되는 얕은 바다이다.

 

지금부터 불과 1만년전 쯤, 선조들의 터전 위를 배를 타고 가고 있다.

 

따라서 안산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지금 배 밑바닥 물속에는 신석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고 

 

추정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풍도에 다가가면서 수심이 깊어지며  수심 40미터 정도를 기록한다.

 

 

 <풍도 근해에 도착 - 날이 개었다.>

 

10시 10분경 풍도 근해에 도착


날씨가 씻은 듯이 개임


풍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선회하며 풍도의 풍광을 감상함.


 <토석 채취 작업장 - 붉은 속살을 내 비친다.>

 

 

 < 저 아름다운 붉은 암석이 과연 선캠브리아 시기에 형성된 편마암일까? >

 

 <흑산도 옆에 있는 홍도의 기암괴석과 빛깔과 모양이 유사>

 

풍도의 붉은 빛 띠는 기암괴석을 보는 순간 홍도의 풍광이 동시에 떠올랐다.

 

풍도 지질 조사 결과에 의하면 "풍도의 지질은 안산과 마찬가지로

 

선캠브리아기(약 20억년전)의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 한다.

 

안산 앞 바다에 떠있는 대부도, 입파도, 육도 등등의 섬들도 선캠브리아기의 암석으로 이루어져있다.

 

 <10시 40분경 풍도 도착 >

 

일정상 20분정도 밖에 섬에 머물수 없었다.

 

후일을 기약하며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린다.

 

thecold 라는 분이 "안산에서 풍도가는 방법 질문에 대한" 답글을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풍도를 가려면 인천 연안부두에  풍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함.
매일 오전 9시 30분 인천에서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2시간 걸립니다.
요금은 23,000원입니다.
풍도에서 나오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입니다.
당일 코스로는 여행이 힘듭니다.
그리고 어선을 빌려타지 않는 한 절대 대부도에서 풍도로 가는 배는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어려운 길을 쉽게 내준 <단원과 수평>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포구쪽의 관찰되는 암석은 안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편마암류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풍도 뒤편으로 보이는 붉은 암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육도를 뒤로하고...궁평항을 향하여>

 

 

 <수심이 5.4m 밖에 안된다.>

 

궁평항까지는 아직 10키로 정도가 남았는데...수심이 불과 5.4m밖에 안된다.

 

계기판을 계속 지켜보았는데...입파도를 지나서는 평균 수심이 10미터가 되질 않는다.

 

선장이 계기판에서 눈을 뗴질 못하고, 다른 배의 선장과 심각한 표정으로 교신을 한다.

 

 

 <도리섬>

 

배 우측으로 보이는 섬이 도리섬이다.


풍도 주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정착했던 섬으로 풍도가 안산으로 편입된 이후

 

도리섬은 화성시에 속한 섬이기에 현재는 풍도 주민의 입도를 금지하고 있다.


주민은 주민이고, 섬은 과거부터 거기에 있었건만 행정구역 조정으로 피해를 입은

 

풍도 주민이 안타깝기만하다.


사진을 자세히 관찰하면 사주(모래톱)가 제방을 쌓아놓은 듯 육지를 향하여 길게

 

해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모래톱 - 해빈(海濱,beach,해변이라고 한다.)에서 가까운 바다에 파도가 쌓아놓은

             모래나 굵은 퇴적물의 언덕.

 

입파도를 지나서 부터는 수심이 10미터 이내이다.


모래톱과 암초로 난파될 위험으로 선장은 계기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긴장을 풀지 않는다.

 

다른 배와 계속해서 무선 교신을 한다.


해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는 바다를 항해중이다.


 <궁평항 선착장>

 

 백중 사리 때에는 바닷물이 거의 다리 위까지 올라와 넘실거린다. (음식점 벽에 붙은 사진을 보면...)

 

물이 많이 밀려 나간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선장들의 배몰이가 조심스러웠고, 궁평항 들어가기를 꺼려했던 듯 하다.

 

 < 12시 20분경 궁평항 도착 >

 

 1960년대 말...추석 풍경

 

외할머니의 산소가 벽제 공동묘지에 있었다.

 

당시 벽제를 가려면 서울 교외선 열차를 타거나, 불광동 쪽에서 차량을 이용해야 갈 수 있었다.

 

차량편이 넉넉지 못한 시절이므로, 화물차 뒤에 짐을 묶는 고무밧줄을 얽기설기 메어논 공간 사이에서,

 

짐짝처럼 덜컹거리며 산소를 다녀오곤한 기억이 떠오른다.

 

 

 <2시 20분 아산만 입구 도착 >

 

시화호 방조제(1994년) - 선재대교(2000년) - 화옹호 방조제(2003년) - 남양방조제(1974년)

 

아산만 방조제(1973년) 를 지나 아산만 입구에 도착하였다.

 

직접 건너지는 않았지만 영흥대교(2001년), 서해대교, 삽교호방조제(1979년)

 

당진 쪽의 대호방조제, 석문 방조제 곁을 지나쳤다.

 

 

평택의 김해규 선생께서 평택의 역사와 문화, 청일전쟁의 의의, 청일전쟁 격전지에 대해 

 

중요한 부분만 간추린 안내가 있었다. 

 

 

 <3시 37분 소사벌 도착 >


<김육 선생 대동법 시행 기념비>

 

 < 4시 35분  만근다리 도착>

 

 <아교  - 조선시대 삼남대로 길>


 <5시 11분 고박사 냉면집 도착>

 

면발이 질기지 않고, 이빨로 쉽게 끊어지고, 씹히는 감촉도 그만하다.

 

편육도 듬뿍 넣어주고 담백한 육수 맛도 일품이다.

 

 

5시 40분 평택 출발


차안에서 간단한 소개와 답사 소감 발표.


7시 안산 도착


12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였다.



궁금한 점 몇가지

 

첫째 :  육도라면 섬이 여섯개 있어야 하는데... 지도상에도 다섯개 뿐이고,

          현장에서 헤아려도 섬이 다섯개 밖에 안보인다.

 

둘째 : 홍도는 선캠브리아계의 변성암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

 

          2000년 연구에 의하면 비교적 근래(약 1억년전 백악기) 생성된 퇴적암층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풍도의 지질구조도 선캠브리아기 지층과 백악기의 지층이 혼재되어 있지 않을 까? 

 

          그렇다면 붉은 사암 속에 공룡화석도 묻혀있지 않을까?

 

셋째 : 지도를 보면 풍도와 울도는 무려 32Km나 떨어져 있다.

 

          풍도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후망산에 올라 보니,

 

          선갑도(풍도에서 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산머리만 보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투 장소는 풍도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인데?

 

           풍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고승호는 과연 보물선인가?

 

결론적으로 고승호에는 은화가 많이 실려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청나라 군사 1200명을 남의 나라 배에 태워 전쟁터로 실어나르는데...

 

왜? 은화를 배에 가득 실고 갔겠는가?

 

그렇다면 어디서 보물선의 전설이 시작되었을까?

 

보물선은 아마도 영국이 배상을 많이 받기 위해 있지도 않은

 

귀중보화가 실렸다고 하는데서 발단이 되었고,

 

그후에는 사기꾼들이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술책으로 보물선 전설을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쪽 해역은 수심이 깊지 않으므로, 작업하기에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보물 소식 없는 것도 보물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바침 해 준다.

 

 

 

출처 : 안산지역사연구모임
글쓴이 : 구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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