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청에서 원곡동을 향해가다가 원곡고등학교 정문을 지나면 뗏골로 향하는 큰 삼거리가나온다
이곳에서 뗏골쪽으로 가다가 원곡기숙사 삼거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양문교회가 보인다
양문교회를 오른쪽으로 끼고 다시 걸어 들어가면 오씨농장이란 팻말이 보인다.
이 언덕위에 고려말 왜구격퇴에 큰 공을 세운 오언(吳彦)의 묘가 있다.
안산지역의 무덤이 대부분 조선왕조의 인물인데 고려시대 인물로는 드문 예이다.
물론 양상동에 있던 것을 얼마전 옮겨 온 것이지만 안산을 600년이상 지켜온 무덤 중 하나이다.
오언(吳彦) 〔생몰년 미상〕
고려의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개성부좌윤 천(蕆)의 손자이며 예부상서 윤백(允伯)의 아들. 공민왕때 문
과에 급제하여 밀직사, 병마사, 원수, 도수문사를 역임하였다. 우왕 초에 왜구가 울주(蔚州)・청도(淸道)・밀양(密陽)・자인(자인)・언양(彦陽) 지역에 쳐들어오자 원수(元帥)가 되어 우인열(禹仁烈), 배극렴(裵克廉), 하을지(河乙沚) 등과 더불어 울주에서 적 10인의 목을 베고 배 7척을 노획하였다. 우왕5년에는 배극렴, 박수경(朴修敬) 등과 더불어 사주(泗州)에 쳐들어온 왜구를 공격하여 140여명을 베었다. 왕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전리판서(典理判書) 정남진(鄭南晋)을 보내어 모든 장수에게 술을 내렸다. 이듬 해 3월 왜구가 광주(光州), 능성(綾城), 화순(和順) 등지에 공격해 들어오자 최공철(崔公哲), 김용휘(金用輝), 이원계(李元桂) 등과 더불어 이를 막아내었다. 이어 8월에는 왜구가 사근내역(沙斤乃驛)에 진을 치자 양광도조전원수(楊廣道助戰元帥)가 되어 이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패하여 군사 500여인을 잃기도 하였다. 이듬해 5월 왜구가 이산수(伊山戍)를 공격하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1388년에는 임주도순문사(林州都巡問使)가 되어 왜구와 대적하였다.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출사를 거부하고 안산에 은거하였다. 원곡동 뗏골에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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