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분할의 역사
이완범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개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려고 한다. 사회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면 자기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잘못한 일을 숨기거나 줄일 것이다. 공평한 시각으로 나와 상대방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조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국이 처한 상황을 무의식 중에서라도 옹호하게 될 것이다. 외세에 침략을 당했다면 분노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패배의 요인을 다른 핑계에서 찾을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살피기는 참으로 힘들다.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시선을 갖기란 어렵다.
가슴 아픈 한반도 분할의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한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도 『한반도 분할의 역사』로, 마취없이 수술하는 것처럼 아프다. 너무 슬프면 오히려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은 아픈 역사를 살피는 것임에도 울 수가 없다. 울지 마라. 대신 남북한이 대치한 상황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봄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깨우쳐야 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한반도 분할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통사적으로 접근하면서 현재까지의 분할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임진왜란 때의 일본의 분할 요구나, 19세기의 일본은 청, 러 관계에서 한반도 분할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2차대전 때 일본의 패망을 내다본 미국은 한반도의 영토에 대해 고려하였다. 미국의 일본 전체 점령과 소련의 만주 인정은 기정사실로 하고,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공동 점령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미국은 한반도의 어느 선을 한계점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예리하게 검토한다. 당시 담당자였던 헐 준장의 인터뷰에 의하면 ‘38선은 1945년 7월 25일경 포츠담에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 헐선은 그대로 38선 이남은 미군이, 38선 이북은 소련이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1945년 소련과 미국 사이의 분할 논의는 38선으로 현실화되어 1953년 휴전선으로 변형되어 오늘날까지도 남북의 분단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헐선이 군사적 편의선이라는 시각과,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많은 설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헐선은 ‘힘 없어서 만들어진 강제선’이다. 미국과 소련, 중국, 일본, 영국 어느 나라나 상대국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하게 자국 위주이다. 자국의 이익에 반하거나, 자국의 힘을 증대시키는 경우에는 망설임없이 행동한다. 헐선은 군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선인 것이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는 이런 국가의 속성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속속들이 알려준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누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때부터 이어진 한반도 분할선 논의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일본과 명나라의 기록, 조선의 기록들을 비교하면서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강대국들에 의해 주도된 분할선 주장에 대해 저자는 주눅들지 않았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더 연구해서 올바르게 바로잡는다. 이 책의 핵심은 있었던 일 그대로를 직시하는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그것이 38선 획정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상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륙쪽에서는 해양으로 나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고, 반대로 해양국가들에게는 대륙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대국들의 간섭을 받을 위치라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힘이 약할 때는 한반도를 나누자는 주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해양세력과 대륙 세력 사이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강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은 기록의 정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본문은 500여페이지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본문의 부연 설명인 미주는 250여페이지나 된다. 그 뒤에 작가가 참고한 서적이 또한 깨알같이 박혀있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다른 연구서들을 많이 참고했다. 미주는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나지막히 들려준다. 저자가 얼마나 준비를 꼼꼼히 해서 출간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비단을 짜기에는 씨실과 날실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아름다운 천이 되듯이, 이 책은 연구와 조사와, 비교를 통해 아름다운 비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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